새소년 황소윤 “어떤 때보다도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나로서, 새소년.
“더러운 것들이 더 이상 더러워 보이지 않을 때 지금 세상을 굉장히 아름답게 느끼고 있구나 깨닫게 돼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거슬려왔는데,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남기고 떠난 하나의 흔적이라면요?”
GQ 최근에 느슨한, 헐렁한 옷을 좋아하게 되었다면서요?
SY ‘느슨하다’, ‘헐렁하다’라는 형용사는 단어 그 자체보다는 내포하는 의미가 더 큰 것 같아요. 평소 패션에 무척 신경을 쓰거나 하는 편은 아니지만 프로젝트에 따라, 삶의 타임라인에 따라 어떤 의복이 가장 태도에 잘 맞는지, 어울릴지를 고민해요. 이번 앨범에서는 무엇이 자연스러운지, 그것을 따라갔을 때 얼마나 나다울 수 있는지, 나다울 때 생기는 아름다움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실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표현들이 나온 것이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꽉 끼고 불편한 옷도 너무 좋아합니다. 하하.
GQ 느슨한 옷 안에서 조금쯤은 자유로워진 것 같나요?
SY 글쎄요···, 오늘 같은 화보 작업에서는 평소 추구하려는 방향성을 모두 반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평상시에는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덜어내고 있어요.
GQ 이를테면요?
SY 예컨대 평소에는 데님 진과 무지 반팔 티셔츠와 어디서 받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죠. 5년 전쯤 사두고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재킷을 지금에야 꺼내 매일 입고, 매일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찾아 여러 켤레 구매해 신어보기도 하고. 프로필 사진 작업도 저를 가장 잘 아는 친구가 제가 근래 입는 스타일을 참고해 편하게 챙겨왔어요. 매일 입는 하얀 민소매에 청바지, 재킷 하나, 안경. 요즘은 그 정도로 끝내는 것 같아요. 이것이 자유로운가요? 혹은 스스로를 가장 적합한 감옥에 가두는 것일까요!
GQ (!) 앨범 <NOW>는 저로 하여금 헐렁한 옷을 입고 힘을 쭉 뺀 채로 편하고 자연스럽게 듣고 싶은 음악이었어요. 비엔나, 도쿄, 홍콩 등 여러 도시에서 음악을 재생했는데, 특히 ‘Remember!’에 다양한 도시와 길, 기억들이 들러붙는 느낌이 좋았어요. 기억을 덕지덕지 붙여 계속 듣고 싶은 노래라고 할까요. 이 노래를 수없이 부르고 들었을 황소윤에게 ‘Remember!’는 지금 어떤 노래처럼 느껴져요?
SY 사실 음악을 만들고 나서는 그때그때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하기보다는 음악을 지은 당시의 느낌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Remember!’는 어떤 복잡한 상황에 있더라도,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인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음악인 것 같아요. 존재의 기쁨이나 존재의 이유 같은 것. 무대에서도 가장 단순하게 기쁜 마음으로 부를 수 있는 곡이에요.
GQ “다시 벌거벗은 황소윤으로 돌아가는 내용이지 않을까.” 언젠가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벌거벗은 황소윤은 무엇이며, 벌거벗은 황소윤으로 돌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SY “벌거벗는다”고 언급했던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주는 자유와 날것의 의미도 크겠지만, 반면에 그로 인해 느끼는 수치심, 그리고 그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내용에 더 가까워요. 벌거벗는다고 해서 자유를 표방하겠다, 더 자연스러워지겠다는 선언이 주된 내용이라기보다는, 그에 따른 수치심 또한 감당하는 것, 그것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동안 존재의 수치심 같은 것이 늘 물밑에 깔려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고심하고, 검열하고, 늘 부끄러워하고 말이죠. 그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해내는 것들이 담겨 있는 앨범이 된 것 같아요.
GQ 벌거벗어보니 어떻던가요?
SY 똑, 같습니다. 하하하. 글쎄요. 미국으로 이사하면서 일상이 더 일상다워진 것 같고, 각각의 프로젝트와 자아들이 모여 황소윤 통합본이 하나 만들어진 느낌이랄까요? 나중에 어떻게 다시 또 분리될지 모르겠지만 우선 가장 강력한 본체 하나가 비로소 완성되어 가는 것 같아요.
GQ 이번 앨범은 어찌 보면,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이 자신의 생을 또렷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게 강렬한 울림을 남긴 것 같아요. 그의 죽음이 남긴 ‘내가 누구인지 절대 잊지 말자’는 결심은 지금 어떤 형태로 숙성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SY 시간에 따라 숙성되는 형태라기보단 늘 현재형에 있는 것 같아요.
GQ 현재형이라.
SY 게임 속에서 목숨을 잃으면 저장해둔 가장 첫 번째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어떠한 거점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GQ 류이치 사카모토를 두고 “저에게 주먹으로 가슴을 두 번 치는 사람 같아요”라는 표현을 했죠. 주먹을 두 번 맞은 황소윤은 달라졌나요?
SY 그 계기가 달라지게 하지는 않았지만, 눈빛에 어떠한 각오 같은 것이 생긴 것 같아요. 누구보다도 잘 놀고 잘 먹고 잘 살고 후회 없이 건강할 것이라고요!
GQ 평양냉면, 카레 우동을 좋아하던 류이치 사카모토와 마주 보고 면을 이빨로 끊으면서 나눈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SY 한국말을 조금 더 알려달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나요. 그리고 잘 크고 있어서 기특하다고 하셨어요.
GQ 선곡 센스가 엉망인 단골집 식당에 류이치 사카모토가 직접 플레이리스트를 짜준 일화가 유명하죠. 함께 갔던 평양냉면집에 <NOW>의 곡 하나를 걸어둘 수 있다면, 무엇이 좋을 것 같아요?
SY ‘Eden’이라는 트랙을 걸 것 같아요.
GQ 그 전까지 새소년의 곡은 대개 한국어였는데, 이번 앨범은 한글, 영어 두 가지 버전의 곡들이 있죠. 같은 곡이라도 언어 때문에 다르게 확장되는 지점이나 순간이 있었을까요?
SY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었어요. 새소년의 기존 작법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입에 붙게 번역하려고 여러 경우의 수와 방법들을 찾았거든요. 다른 언어가 주는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거부하지 않고 흥미롭게 받아 들이면서 같은 가사지만 다른 언어로 부른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이미 너무 새로워서, 작업 과정 자체를 즐겼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더 다양한 언어들로 불러보고 싶어요.
GQ ‘난춘’이 그랬던 것처럼,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위로가 되는 곡이 갱신되었을까요?
SY <NOW>의 모든 음악이 그러한 것 같아요. 실제로 앨범 작업을 하면서 흔들리고 움츠러드는 몇몇 순간에서 이번 앨범의 음악이 위로가 되어주었어요. 노래에 담으려고 했던 변하지 않는 시선들이,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한순간에 정리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특히나 ‘작은마음’은 열일고여덟 살 즈음에 쓴 곡인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음속에서 늘 위로처럼 품고 있었어요. 드디어 나눌 수 있어서 기뻐요!
GQ 그나저나 아까 촬영에서 많은 진땀을 빼게 해드려 송구합니다. 앨범 제목 <NOW>처럼, 나무가 베어지고, 한쪽에서는 포크레인이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지금이 아니면 아닐 풍경들’ 속에서 지금의 새소년을 기록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SY 대한민국의 더위와 서울의 바쁨 컬래버! 정말 엄청났어요. 아하하. 올해 일 년 가운데 한 달 간의 여름을 한국에서 보냈는데, 오늘이 가장 인상 깊었던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너무나 덥고 시끄럽고 정신이 없어서 그냥 지금에 맡기자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보니, 에디터님의 의도가 명중했네요.
GQ 직접 참여한 화보 가운데 어떤 화보를 멋지다고 느껴요?
SY 화보는 제 역할과 참여하는 다른 스태프들의 역할이 공평하게 나뉘어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최선의 기여를 할 때만이 좋은 화보라고 생각해요. 완전한 팀워크지요. 보통 낯선 환경에 금방 예민해지는 편이라서 요즘은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최대한 즐겁게, 그리고 완성도 있게 보낼 수 있을지 파악하고 조금 더 리드를 하는 편이에요. 그래야 좋은 결과가 나오니까요. 화보는 과정이 아닌 결과로 보여지는 극악무도 잔인한 세계인 것 같습니다? 아직 이번 화보 사진을 모두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해보지 않은 스타일인 건 확실한 것 같네요.
GQ “진짜 예쁜 건 추함이 섞여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라는 언젠가 소윤의 말이, 저는 너무 사랑스럽게 들렸어요. 한편으로 황소윤은 추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짐작도 해보았고요.
SY “진짜 예쁜 건 추함이 섞여 있어야 된다”는 아마도 제가 가진 시선에서 꽤나 중요한 무게를 가지는 문장인 것 같아요.
GQ 중요한 무게란 건 뭘까요?
SY 사실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문장은 아니라서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지는 않지만, 새소년의 두 번째 EP <비적응>을 작업할 즈음 제가 사회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탐구하면서 무수한 의문점을 만들고, 그것에 답변하려는 많은 과정을 가지다 보니 스스로 추함에서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로부터 나에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더 관찰해가고 있는 중이에요.
GQ 요즘 황소윤에겐 무엇이 예뻐 보이고 추해 보이나요?
SY 더러운 것들이 더 이상 더러워 보이지 않을 때 지금 세상을 굉장히 아름답게 느끼고 있구나 깨닫게 되어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거슬려왔는데,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남기고 떠난 하나의 흔적이라면요?
GQ 지금 주먹으로 머리를 두 번 맞은 기분이에요. 얼마 전에는 LA로 터전을 옮기기도 했잖아요. 읽는 것을 사랑하는 황소윤에게 지금 사는 도시 LA는 어떤가요?
SY 너무 좋죠. 특히나 제가 거주하는 곳은 무척 조용해서, 종종 바람에 살살 흔들거리는 야자수 잎과 풍경 소리를 보고 들으면서 글을 적어요. 책도 읽고요, 그림도 그리고요.
GQ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니 서점에 자주 가는 것 같던데요.
SY 맞아요. 미국 서점은 한국 서점과 냄새도 달라요. 아마도 종이의 재질이 달라서인 것 같은데, 저는 한국 서점의 냄새가 익숙해서인지 더 좋아요.
GQ 요즘 새삼 발견한 책이 있나요?
SY 페르난도 페소아 작가를 정말 좋아하는데, 미국에는 한국에 발매되지 않은 책들이 좀 있어요. 한국어로 된 번역과 영문 번역의 차이들을 실감하면서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한국에 갈 때마다 서점에 들러 읽고 싶었던 책들을 조금씩 사오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무게가 꽤 있어서 요즘에는 이북(E-Book)을 이용하고 있어요.
GQ 책을 읽는 독특한 습관이 있어요?
SY 보통 두 가지 정도의 책을 한 번에 읽는데, 한 책은 주로 어디를 펴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골라 평생 반복해서 읽는 편이에요. 가방에는 이북을 위한 아이패드, 그리고 종이 책, 그리고 노트. 이렇게 넣어 다녀요. 요즘은 발터 벤야민의 유일한 문학! <고독에 대하여>라는 책을 재밌게 읽고 있어요.
GQ LA에서 집이 없는 부랑자가 된 이점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고요. ‘부랑자’와 ‘이점’이라는 단어가 가져오는 마찰이 꽤 상큼하게 들렸어요.
SY 저는 분명 개인 각자가 가진 생활방식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개별화되어 있고 개성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인간은 생각보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능력이 강하다 보니 벗어나기보다는 눌러앉기 마련인데, 부랑자가 되면 좋든 싫든 환경을 계속해서 바꾸고, 그 바뀐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습성이 필요하죠. 지난 몇 개월 동안은 그렇게 되기를 연습했던 것 같아요. 서바이벌에 강한 체질은 아니라 늘 후폭풍이 따르지만, 그 대신 더 많은 경험과 세상을 구경할 수 있어서 그 이점을 잘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GQ 부랑자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느끼게 되는 집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SY 그럼요. 당연히 외로움도 느끼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있고 어디에도 내 집이 없는 것만 같은 기분도 느끼지만, 단순히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보다는 정신적인 의미에서의 집을 더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다시 돌아오면, 어떤 때보다도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GQ 언젠가 ‘고독’, ‘잉여 시간’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같이 있어도 혼자 다른 세상에 가 있는’ 느낌에 대해 말한 적이 있어요. LA라는 도시는 그러기에 좋은 무대인가요?
SY 가끔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제가 LA에 적응할 수 있는지’를 물어와요. LA라는 도시의 이미지가 치열한 소셜 라이징과 비지니스의 장으로 여겨지기 마련인데, 저는 되레 이 도시에 있는 것이 고요한 뇌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원할 때 친구들을 만나고, 그 외의 시간은 음악이나 생활에 집중하고요. 아마도 전에 살던 서울보다는 사람 간의 물리적인 거리가 떨어져 있고 자연이 가까워서 그런 것 같아요.
GQ 요즘 황소윤의 잉여 시간에 대해 들려주세요.
SY 모든 시간이 잉여로워서 특별히 잉여 시간에 무엇을 한다고 여겨지지는 않아요. 쓸데없다고 느꼈던 시간들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려는 것 같고요. 가령 직접 요리해 먹는 데 시간을 많이 쏟거나 밥 먹으면서 유튜브 보는 것에 재미를 붙인다든지요!
GQ 완전한 몰입을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SY 체력, 그리고 여유.
GQ 저는 ‘뉴 로맨틱’을 들으면서 최근에 들었던 “행복이란 좋아하는 사람과 낭비한 시간”이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요즘 무언가를 기꺼이 낭비해도 좋을 만큼 몹시 로맨틱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있나요?
SY 사랑하는 것들과 함께 있으면 무엇이든 낭비는 아닐 것 같아요. 반면에 생산적이더라도 마음에 울림이 없는 것들은 낭비라고 느껴지고요. 로맨틱하다는 건 얼마큼 내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헌납할 수 있는가에 달린 것 같아요.
GQ 지금 황소윤의 항해는 집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나요, 부랑자로도 괜찮은 상태에 다다르는 것에 가깝나요?
SY 집은 찾은 것 같고, 그래서 결국 부랑자가 된 건지 저의 집이 생긴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GQ 지금 황소윤에게는 무엇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느껴요?
SY 지금이요.
GQ “적어도 나는 내 삶을 사랑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고 말한 적이 있잖아요. 지금은 어떤가요? 그 뒤 문장은 어떻게 이어지게 될까요?
SY 삶 전반의 행보가 모두에게 노출되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가끔 내가 내 삶을 사랑하는 것보다 타인이 내 삶을 더 사랑해주고, 그 사랑을 위안삼아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뒤 문장을 잇는다면 적어도 사람들이 내 삶을 사랑해주는 만큼, 혹은 더, 나는 내 삶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삶을 사랑한다기보다는 적어도 팔자를 긍정하는 것 같아요.
GQ “지금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류이치 사카모토 선생과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이렇게 물어 온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거예요?
SY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