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텔 아드난과 이성자의 만남
이 전시를 본 뒤 서울의 나와 레바논 혹은 파리의 누군가가 연결되는 상상을 해봅니다. ‘붉은 실’로 이어져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난다는 운명론적 인연이 아니라도 말이죠. ‘2026년을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비슷한 고민과 문제에 당면할 타국의 누군가를 떠올리며 조금 위로받습니다. 화이트 큐브는 지리적으로 멀고 장르가 다를지라도 공통점이 보이는 두 작가의 작품을 한데 전시하곤 합니다.
올해 화이트 큐브 서울의 첫 전시는 레바논 출신 작가 에텔 아드난(Etel Adnan, 1925~2021)과 재불 1세대 추상화가 이성자(Seundja Rhee, 1918~2009)의 2인전 <태양을 만나다(To Meet the Sun)>입니다. 에텔 아드난의 작품은 한국에 첫선을 보입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둘의 작품이 이질감 없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에텔 아드난의 태피스트리와 이성자의 회화 작품을 번갈아 보는데 장르는 달라도 연결성이 보입니다. 이성자 작가가 하나하나 터치한 회화의 직조감이 에텔의 태피스트리와 닮은 것이죠. 겪은 일도 태어난 곳도 달랐던 이 두 작가의 세계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이성자 작가는 1918년생, 에텔 아드난은 1925년생으로, 두 작가 모두 자국 정치 상황 때문에 1950년대 초반 파리로 이주합니다. 이성자 작가도 6·25전쟁을 피해 1951년 파리로 떠나죠. 한국 미술가 가운데 프랑스로 이주한 1세대 작가 중 한 명으로, 아흔이 넘을 때까지 현역으로 활동했습니다. 에텔 아드난은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캘리포니아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미국 서부의 빛을 담아낸 회화 작업을 시작했죠. 1970년대엔 레바논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레바논 내전에 관한 소설을 쓴 후엔 살해 위협에 시달리다 파리로 이주합니다. 이렇듯 두 작가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거나 어린 나이부터 미술로 전업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길, 예술을 뒤늦게 발견하고 평생 정진한 경우죠.
또한 둘은 우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960년대는 우주탐사 열기가 전 세계에 가득했기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죠. 에텔 아드난은 태양과 달, 타말파이스산의 실루엣을 반복적으로 작품에 등장시키고, 이성자는 지구와 행성계가 연상되는 기하학적 구조를 화면에 배치합니다. 이성자는 1995년부터 2008년에 걸쳐 ‘우주 시대’ 연작을 전개하죠. 전시명 ‘태양을 만나다’도 에텔 아드난이 1968년 발표한 인류 최초 우주 비행사의 죽음을 기린 시에서 가져왔습니다. 전시는 3월 7일까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