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아 거버의 인생을 바꾼 5권의 책
스트리트 스타일을 찍은 피드에서 카이아 거버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면, 그녀가 들고 다니는 소장품 중에서 매우 흥미로운 아이템을 하나 발견했을 겁니다. (자크뮈스 백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진을 확대해보면 거버가 거의 언제나 책을 가지고 다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책들은 매우 다양해서, 두꺼운 고전인 제프리 유제니디스(Jeffrey Eugenides)의 <미들섹스(Middlesex)>나, 퓰리처 상 수상 작가인 리처드 파워스(Richard Powers)의 흥미진진한 <오버스토리(The Overstory)>도 있죠.
거버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었다면 그리 놀라운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지난 2020년 3월, 그녀는 인스타그램에서 독서 클럽(@libraryscience)을 시작했습니다. 거버는 데이지 에드가 존스와 폴 메스칼을 초대해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첫 회를 시작으로 이후에도 제인 폰다, 레나 던햄,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 등 여러 게스트를 초대해 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거버는 쾌활하게 “항상 독서 클럽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친구들하고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모임 같은 걸 만들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러다 팬데믹이 시작됐고, 솔직히 처음에는 심심한 게 주된 이유였지만,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서 꺼내기는 조금 어려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어려서부터 책 읽는 재미에 빠졌던 거버에게 독서 클럽을 만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슈퍼모델 신디 크로포드)는 거버가 어린 시절 매일 밤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여섯 살 무렵 학교에 입학해 첫 이야기책을 받았을 때 그녀는 이미 <생쥐와 인간(Of Mice and Men)>을 읽고 있었죠. “엄마는 우리에게 돌아가면서 책을 읽게 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정말 무겁고 중요한 주제의 책들을 읽었어요.” 거버는 웃으며 말합니다. “어릴 때부터 재미를 위한 독서를 시작했다고, 적어도 학교 수업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들 외의 책들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거버는 16세 때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뉴욕에서 모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독서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것도 그때였습니다. 무대 뒤나 패션 화보 촬영 현장에서 대기하며 흘려보내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언제나 대학 진학이 거버의 최종 목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일을 시작해서, 제 평생의 목표였던 대학에는 결국 못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늘 갖고 있었어요.” 거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바라고 갈망하는 교육을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저 독학하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뉴욕에 온 후에 대학생 친구가 저를 맥널리 잭슨(McNally Jackson) 서점에 데려갔어요. 친구는 서점에서 이 작가들은 꼭 읽어야 하고, 이건 정말 중요한 책이라는 식으로 저에게 여러 책들에 대해 알려줬어요. 덕분에 그 책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한 후 읽을 수 있었고, 친구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죠.”
거버는 요즘도 추천받은 책들을 주로 읽지만, 세상 구석구석 자리한 서점에 들어가 우연히 숨겨진 보물들을 발견하는 행운도 즐깁니다. “예상하지 못한 걸 발견하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죠.” 그녀는 어머니와도 계속해서 즐겁게 독서 팁을 교환합니다. 몇 년 전 거버는 어머니와 <리틀 라이프>를 읽으며 이 책의 고통스러운 주제에 대해 함께 고민했습니다. “제가 읽는 책들은 대부분 몇십 년 전에 출간됐기에, ‘엄마, 나 정말 좋은 책을 읽었어!’라고 말할 때마다 엄마가 ‘그래, 나도 읽었어’라고 하는 게 재밌어요.” 거버는 말합니다. “엄마에게 책을 추천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엄마가 읽지 않은 책 중에서 찾아야 하니까요. 엄마와 책들을 공유하는데, 엄마는 여전히 제가 모르는 훌륭한 책들을 많이 추천해줘요.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에요. 저도 아주 많이 읽는데, 저보다 더 많이 읽을지도 몰라요.”
실제로 거버의 독서벽은 대단합니다. 처음 <보그>의 책 추천 요청에, 그녀는 무려 15권이나 되는 긴 목록을 보내줬죠. “처음에는 10권을 골라 달라고 했는데도 고를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다시 웃으며 말합니다. “다시 5권으로 줄이는 건 마치 내 자식들 중에서 누가 가장 좋은지 골라야 하는 것 같았죠.” (여기에서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그녀가 제외한 책들은 무라카미 하루키, 제임스 볼드윈, 메리 올리버, 마야 안젤루, 도나 타트 등의 책이었습니다. 이만하면 그녀의 취향이 흠잡을 데 없다고 말할 수 있겠죠?) “책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다면 언제나 이야기를 나눈다”고 거버는 말합니다. “100권이라도 꼽을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책이란 영화와 비슷하게, 인생의 특정 시기에 봤을 때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도 해요. 1년 후에 다시 읽었을 때는 내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서 같은 느낌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 거죠.” 거버의 이 말은 그래서 매우 공감됩니다. “마치 가장 필요한 순간에 딱 맞는 책이 나를 찾아오는 것 같아요.”
카이아 거버의 인생을 바꾼 책 다섯 권을, 꼭 읽었으면 한다는 그녀의 추천사와 함께 소개합니다.
카이아 거버의 인생을 바꾼 5권의 책
#1.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연인>은 어린 여성과 성인 남성의 사랑을 다루지만, 어린 여성의 시각에서 썼다는 점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어요. ‘롤리타’ 같은 반대 시각의 작품은 이미 많이 나와 있잖아요. 꼭 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다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글은 너무나 아름답거든요. 뒤라스의 책 중에 에세이 <Me & Other Writing>이 있어요. 제가 처음 읽은 뒤라스의 책인데요. 그 책을 통해 그녀가 문장을 구성해내는 방식을 경험한 후 저는 그녀가 쓴 책은 다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연인>은 하루 만에 다 읽었어요. 너무나 시적이고, 슬프고, 아주 아주 솔직하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미 많이 읽어본 이야기를 다른 관점으로 다룬 점이 좋았어요.
#2.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이방인>은 제가 처음 읽은 철학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간결함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철학에 대한 글은 어떠어떠할 것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한 게 있었는데, 카뮈의 글은 그와 달리 매우 사실적이었죠. 방대하고 광범위한 철학적 질문을 직설적으로 던지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그런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거든요. 카뮈는 독자들이 철학적 질문과 씨름하도록 독자를 속여 넘기는 거예요. 그 자체로도 훌륭한 책이지만, 철학 입문서로도 완벽하다고 여겨요.
#3. 조앤 디디온의 <상실>
조앤 디디온을 정말 좋아해요.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예요. <상실>을 읽기 전까지는 디디온처럼 슬픔을 담아낸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는 듯해요. 제가 큰 슬픔을 겪던 시기에, 저에게 도움이 될 기사나 책들을 많이 찾아 읽어봤어요. 그 글들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죠. 마치 슬픔이란 그저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사건처럼,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식으로 접근한 거죠. 하지만 작가는 슬픔을 겪는 길고 긴 과정을 정말 잘 포착했어요.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슬픔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해서요. 디디온은 슬픔이 계속 우리 삶 속에 남아 있다는 걸 매우 솔직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여기에 더해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감정, 예를 들어 분노 같은 감정도 함께 다뤄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썼는데 정말 뛰어난 글솜씨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워하는 것을 글로 풀어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4. 패티 스미스의 <저스트 키즈>
뉴욕에 오기 직전에 읽은 책인데,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기분이 들 거예요. 만약 당신이 젊고 이 책을 읽었다면, 자유롭게 살고 또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기 위해 앞으로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고 싶어질 거예요. 저는 아주 다른 양육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 책에서 큰 영감을 얻었어요. 전에는 결코 이해하지 못한 세상으로 초대받은 것 같았고, 예술을 창조하는 게 가능한 일처럼 느껴졌죠. 창작은 언제나 할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어렸을 때 들었던 사랑 이야기와는 다른 결말을 맺는 사랑 이야기예요. 사람들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연애와 사랑 방식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책이죠.
#5.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이 책을 읽은 게 아마 2021년쯤일 거예요. 그전에는 레이먼드 카버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어요. 제가 끌리는 글들은 대부분 프랑스나 러시아 작품들인데, 이상하게 레이먼드 카버의 드러내놓고 미국적인 부분에 관심이 갔어요. 미국 문화와 사회를 정말 뛰어나게 그려낸 책이에요. 시작, 중간, 끝이 뚜렷하게 나뉘지 않는 삶의 작은 파편을 담고 있지만, 그런 작은 순간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죠. 저는 형식을 잘 활용하는 책들을 정말 좋아하는데, 레이먼드 카버는 정말이지 천재라고 생각해요.
카이아 거버의 추천 책 5권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알베르 카뮈 <이방인>
조앤 디디온 <상실>
패티 스미스 <저스트 키즈>
레이먼드 카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