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를 예술로 기록하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공간 DMZ.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이곳에서 매년 현대미술 전시가 열려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8월 11일 개막한 ‘DMZ OPEN 전시 : 언두 디엠지(UNDO DMZ)’가 11월 5일까지 열린다. 양혜규, 원성원, 김준 등 국내외 작가 10명이 26점의 작품을 선보이며, 전시는 민통선 내 통일촌 마을, 갤러리 그리브스,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나누어 열린다.
전시 제목 ‘언두 디엠지’는 양혜규의 2020년 작품 ‘디엠지 비행’의 영문 제목에서 빌려왔다. 언두는 되돌리다, 원상태로 하다로 번역되지만, 열다와 풀다의 의미도 지닌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김선정은 “지난 70여 년간 긴장과 전쟁의 잔재로 존재한 비무장지대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 스스로의 힘으로 회복하는 과정을 예술가의 시선과 작업을 통해 바라보는 시도”라고 설명한다.
전시장은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곤돌라에 탑승해 갤러리 그리브스, 통일촌 마을 등으로 진입할 수 있다. 임진각 평화누리의 푸른 잔디에는 압도적인 대형 설치 작품이 들어섰다. 원성원의 ‘황금털을 가진 멧돼지’는 설화를 통해 남북의 화해와 치유를 말한다. 신라 시대 철원 보개산 기슭의 돌배나무에 앉은 까마귀가 날아오를 때 우연히 떨어진 배에 독사가 맞았다. 독사와 까마귀는 서로 공격하다 죽었고 원한이 윤회를 거듭해 이어졌다. 지장보살이 황금털을 가진 멧돼지로 환생한 후 사냥꾼의 화살을 맞음으로써 원한의 고리를 끊어냈다. 작가는 황금털 멧돼지가 그랬듯이 오래 반복된 상처와 원한이 끊어지길 소망한다.
햇빛을 받아 붉게 타오르는 또 하나의 설치 작품은 오상민의 ‘빛: 자연과 선(線)의 틈에서’이다. DMZ에 자생하는 덩굴식물을 추상화해 금속사를 니팅(뜨개질) 기법으로 엮어냈다. 덕분에 햇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임진각 평화누리에는 드넓은 공원과 카페도 있으니 본격적으로 전시를 둘러보기 전 피크닉을 즐겨도 좋다.
메인 전시장인 갤러리 그리브스는 미군 볼링장이었다. 이곳에선 폐기된 전투용품을 재활용한 작품이 눈에 띈다. 오상민의 ‘쏘일 투 쏘울’은 방탄복과 방탄 차량 등에 쓰이다 폐기 예정이던 아라미드 원사로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브랜드 래코드(RE;CODE)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군용 소재 활용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버려지는 텐트와 군복, 낙하산 등을 매입하고 세척, 해체해 새로운 의류로 재탄생시켰다. 전시에서는 그렇게 완성된 의상과 가방 등을 볼 수 있다.
통일촌 마을에선 우선 곡식 창고로 들어섰다. 이곳은 실제 주민들이 사용하는 곳으로 가을 수확 철이 오기 전까지 전시장으로 활용된다. 중앙에 양혜규의 설치 작품 ‘디엠지 비행’이 자리한다. 손풍기, 꽃가루, 로봇 벌, 수력발전 댐, 송전탑, 번개 등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물건이 뒤엉킨 평면 작업이다. 전시 주최 측은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 이면에 인간계와 자연계의 (비)가시적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곡식 창고를 나오자 맞은편에 아담한 전시 공간이 등장한다. 작가 박준식이 2019년부터 머물며 작업해온 공간이다. 박준식은 DMZ 일대에 서식하는 식물을 수집해 표본화했다. 김준 작가의 ‘혼재된 신호들’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지역에서 채집한 소리를 박스 형태 설치물에 담았다. 이 사운드박스는 회전하기에 실제 자연 속에 있는 것처럼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전시 외에도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열린다. 김준 작가의 사운드 워크숍, 경기도 예술인과 함께하는 문학 프로그램, 컬러링 만들기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