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랑꾼이 보내온 이스터에그 꾸러미 ‘버터플라이’
한국에서 촬영한 글로벌 첩보물 <버터플라이>가 아마존 프라임 공개(8월 13일) 이후 TV 쇼 부문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로스트>, <하와이 파이브-오> 시리즈의 대니얼 대 킴이 총괄 프로듀서와 주연으로 참여했다. 그의 회사 3AD는 한국 드라마 <굿닥터>를 리메이크한 <더 굿 닥터>를 제작한 바 있다.
<버터플라이>는 모국에 대한 대니얼 대 킴의 본격 사랑 고백 같은 작품이다. 원작 그래픽 노블에서 백인들이 연기한 역할을 한국인으로 바꿨고, 무대를 미국과 유럽에서 한국으로 옮겼다. 제작사가 한국관광공사가 아니라 아마존 MGM 스튜디오라는 게 놀랍다.
내용은 단순하다. 스파이 조직 캐디스의 젊은 암살자 레베카(레이나 하디스티) 앞에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 데이비드(대니얼 대 킴)가 나타난다. 데이비드는 캐디스의 공동 설립자였으나 작전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고, 그 후 또 다른 설립자 주노(파이퍼 페라보)가 레베카를 맡았다. 이제 데이비드는 레베카를 조직에서 빼내려 한다. 레베카는 “애 키우기 싫어서 죽은 척한 남자”라고 아버지를 비난하면서도 선뜻 돌아서지 못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주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후 우여곡절과 반전이 계속되지만 예상 못할 수준은 아니다. 대단한 집중력을 요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은 유형의 드라마다.
연기, 액션, 촬영에서도, <버터플라이>는 매우 효율적인 방식으로 오락성을 구현한다. 주인공은 모두 뒤틀린 인물이다. 레베카는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다. 하지만 애정 결핍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자주 혼란에 빠진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와 자신을 이용하는 주노에게 분노하면서도 그들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한다. 데이비드는 레베카를 위해 목숨도 바칠 기세지만 레베카를 믿지는 못한다. 주노는 위로와 학대를 번갈아 행하며 레베카를 휘두르는데, 어느 쪽이 진심인지 자신도 모르는 듯하다. 그런데 이 인물들의 광기, 폭력성, 복잡한 심리 상태에 비해 배우들의 연기는 단조롭다. 때로 그것이 빠른 전개를 위한 의도된 단순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액션의 스케일도 크지 않다. 대신 감정 신은 짧고 액션 신은 잦아서 지루하지 않다. 쉽게 손이 가고 일단 시작하면 완주가 어렵지 않다는 게 이 작품의 미덕이다. 게다가 <버터플라이>에는 다른 첩보물에 없는 보너스가 있다.
데이비드가 막걸리 양조장을 운영한다니까 레베카가 말한다. “힙스터 되려고 한국 왔어요?” 한국에서 막걸리 만드는 게 힙이라면 이 드라마는 힙의 천국이다. 다니엘 대 킴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만일 시즌 2가 제작된다면) 데이비드와 레베카가 하는 일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들이 여행을 다닐 수도 있고, 다른 곳에 정착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첩보물 겸 지역 홍보 드라마의 출발지가 한국인 건 시의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버터플라이> 오프닝은 고층 빌딩 가득한 서울의 야경으로 시작해 노래방으로 이어진다. 레베카의 암살 능력을 보여주는 장면은 여의도 콘래드 호텔이 배경이고, 엘리베이터 격투 신에서는 블랙핑크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주인공들은 한강, 성수동, 청계천, 하늘공원, 남산, 이태원, 지하철역 등 서울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스파이, 암살자, 청부 살인업자 등이 뒤엉킨 추격전은 대구, 안동, 부산, 거제로 이어진다. 청부 살인 회사 이름은 ‘아리랑 솔루션’이고, 데이비드는 자기를 죽이러 오는 레베카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손수 호떡을 빚는다. 주인공 부녀는 쫓겨다니면서도 부산에서 자갈치시장 들르기, 광장시장에서 빈대떡 먹기 등 한국 관광 필수 코스를 잊지 않는다. 주노를 만나러 온 미국 상원 의원은 스파이 조직의 수장인 그녀를 식당에 앉혀놓고 앞치마를 두른 채 신이 나서 부대찌개의 유래를 설명한다. 한국에서 촬영하는 게 오랜 목표였다는 대니얼 대 킴의 흥분이 느껴진다.
배우를 활용하는 방법도 흥미롭다. 데이비드의 장인, 장모 역은 <응답하라> 시리즈에 부부로 출연한 성동일, 이일화가 맡았다. 청부 살인업자 역의 김지훈은 영화 <발레리나>에서 그가 맡았던 섹시한 악당 캐릭터의 오마주처럼 보인다. 2004년 <로스트> 첫 시즌이 방송되자 미드에서 한국어가 들리는 데 충격을 받은 시청자들은 대니얼 대 킴의 억양을 신나게 품평했다. <버터플라이>에서 데이비드의 옛 동료(박해수)가 “한국말 많이 늘었다”고 칭찬하는 대목은 그 시절을 연상시킨다. 이 모든 게 한국 문화를 잘 알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스터에그처럼 느껴질 요소들이다. 발견의 즐거움이 있는 드라마다.
<버터플라이>는 총 6부작으로, 국내에서는 tvN을 통해 8월 22일부터 9월 6일까지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