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Z세대가 선택하는 요즘 ‘웨딩 반지’
밀레니얼부터 Z세대까지, 새로운 세대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법.
결혼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4월쯤, <보그> 편집부에 소식을 전한 뒤부터 선배들과 사무실 공용 책상에 둘러앉을 때마다 이슈는 내 결혼이었다. 결혼을 앞둔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배우자 신상 조사 세션’부터 신혼집과 처가에 대한 궁금증까지, 수다 내내 질문이 이어졌다.
예물에 대한 질문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부부가 선택한 결혼반지는 샤넬 코코 크러쉬다. 사이즈는 두께 약 7mm와 3mm의 스몰과 미니, 컬러는 옐로 골드와 베이지 골드, 그리고 다이아몬드 없이. 많고 많은 반지 중에서 왜 코코 크러쉬였느냐는 질문에 내 대답은 간단했다. 예전부터 사고 싶던 반지니까.
사실 내 선택의 이면에는 ‘원래 갖고 싶었으니까’보다 훨씬 복잡한 속사정이 존재한다. 우리 커플은 반지를 구입하기 전 확실한 기준을 세웠다. 효율적인 소비, 그리고 디자인이 가장 중요했다. 매일 끼고 다닐 반지인 만큼 평소 스타일과도 어울려야 했다. 다음은 예산.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간다’는 결혼 준비 과정을 겪으며, 혼수와 예단의 무서움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으니까. 세 번째도 현실적인 이유였다. 일을 하며 수십 번씩 손을 씻어야 하는 그녀의 직업 특성상, 불편한 걸 싫어하는 내 성격상 다이아몬드가 우뚝 솟아 있는 솔리테르(Solitaire) 링은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 까다로운 조건을 전부 만족하는 반지는 딱 두 개였다. 까르띠에 트리니티와 샤넬 코코 크러쉬. 결혼 예정이던 아내의 ‘베스트 프렌드’가 트리니티 반지를 구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에야 우리는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코코 크러쉬를 선택한 배경에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이유가 얽혀 있는 것이다.
30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1990년대만 해도 예비부부는 다이아몬드와 순금은 물론 유색 보석이 박힌 귀고리, 목걸이, 반지 등을 ‘세트’로 맞추는 것이 관례였다. 집안 형편과 무관하게 예물 세트는 필수였고, 그걸 생략한다는 것은 상대 집안에 대한 결례로 여겼다. 예비 신부에게는 어떤 보석이 싫다거나 좋다 정도의 의사 표현이 허락됐을 뿐 예물 구성과 보석의 크기를 결정하는 주체는 절대적으로 시부모였다. 결혼반지 역시 실제 착용보다는 구색을 맞추는 용도에 가까웠기 때문에,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도드라지는 ‘솔리테르 링’이 ‘양가 어르신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실용성을 중시하고 거침없이 개성을 드러내는 밀레니얼과 Z세대(나는 1996년생으로, 밀레니얼 세대의 막내 격이다)는 다르다. ‘남들 다 하니까’ 혹은 ‘시부모님이 이렇게 하자고 하셨으니까’라는 식의 수동적 자세로 반지를 고르는 예비부부는 이제 거의 멸종했다. 요즘 예비부부는 가장 먼저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다양한 옵션을 충분히 점검한 후 결혼반지를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겉치레를 중시하거나 돈 걱정 없는, 소수의 풍족한 예비부부를 제외하고 약혼반지와 결혼반지를 따로 구입하는 경우도 드물다.
지난해 봄 결혼한 친구는 커스텀 결혼반지 전문 브랜드에서 다이아몬드가 박힌 밴드형의 반지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남들 다 하는 건 하기 싫어서, 또 반지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9월 결혼을 앞둔 친구는 매일 낄 수 있을 정도로 무난하다는 이유로 토르사드 드 쇼메(Torsade de Chaumet)를, 곧 결혼 1주년을 맞이하는 크리스천 부부는 묵주 반지를 선택했다. 유색 보석을 구매한 친구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고, 시부모의 입김에 영향을 받았다는 친구도 전무하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 금전적 여유와 미적 취향을 두루 감안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면 언젠가 결혼할 생각이 있고, 무엇보다도 ‘멋’을 중시하는 또래 에디터들은? <보그> 막내 디지털 에디터는 <지큐> 어시스턴트 시절 콰트로를 낀 선배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는 이유로 부쉐론을 꼽았고, 패션보다 음악이 좋다는 또 다른 선배는 ‘플랫하고 아키타입(Archetype)에 가까운’ 반지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아직 결혼 이야기가 막연할 Z세대 후배는 ‘다이아가 박힌 크롬하츠는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봤다고 전했다.
주얼리 브랜드 역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한 브랜드 담당자는 다이아몬드 판매량이 서서히 감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전통적 의미의 ‘웨딩 링’에 대한 수요가 덩달아 줄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택지가 다양해졌다고 덧붙였다. 모두가 ‘결혼반지란 꼭 이래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우니, 예비부부가 웨딩용으로 출시된 제품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까르띠에를 골랐다면, 웹사이트에 웨딩 링으로 분류된 러브 링을 고집하기보다는 평소 눈여겨본 트리니티나 클래쉬를 구매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도 난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고 있다. 벌써 군데군데 흠집이 생겼지만, 계속 봐도 기분 좋아지는 반지다. 단지 샤넬이기 때문은 아니다. 나와 같이 고른 반지를 끼고 있을 배우자의 얼굴이 떠오르고, ‘내가 결혼하긴 했구나’ 실감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에게 결국 결혼반지란 사랑의 징표이자,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상징한다. 디자인이 어떻건, 다이아몬드가 있건 없건 그 역할만 충실히 해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