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삶이 있어야 예술도 있다, ‘조안 조나스’ 개인전
얼마 전 한걸음에 용인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까지 다녀왔습니다. 바로 비디오 아티스트의 거장인 조안 조나스(Joan Jonas) 개인전 <조안 조나스: 인간 너머의 세계>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인데요. 1936년생인 조안 조나스는 지금까지도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사운드, 텍스트, 조각 등 매체를 종횡무진하고 있는 여성 예술가입니다. 해외 출장길에 종종 조나스의 전시를 만날 때마다 이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는 종일 집중해서 본 기억이 나네요. 제8회 백남준 예술상 수상작가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놀랍게도 국내 미술관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이라 하는군요. 그런 만큼 퍼포먼스, 드로잉, 설치 등을 활용한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까지, 50여 년에 걸친 조나스의 예술적인 실험과 그 결과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자리가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조안 조나스는 퍼포먼스 아트와 비디오 아트가 막 생겨났을 때,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 두 매체를 ‘발명에 가깝게’ 혁신적으로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성과 정체성의 문제까지 예리하게 탐구했죠.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미술계를 놀라게 한 1960~1970년대의 선구적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대거 만날 수 있는데요. 첫 번째 장인 ‘실험-급진적인 순간들’에서는 지금 봐도 신선한 초기 실험작을 선보입니다. ‘여행-자연의 정령, 동물 조력자’라는 제목의 두 번째 섹션에서는 1980년대 이후 여행을 통해 발견한 전 세계 문학과 신화, 그리고 동물 조력자 등의 모티브를 통해 독특한 생태적 내러티브를 구축한 과정을 보여주고요. 세 번째 장인 ‘공생-되살림과 변주’에서는 빛과 그림자, 소리와 침묵, 과학과 감각 등을 통해 명상적이라 해도 좋은 공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주제별로 잘 정리된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행보가 점점 미술에서 삶으로 이동했음을 느낄 수 있죠.
여전히 몇몇 흥미로운 작품이 생각납니다. 예컨대 초기작인 ‘바람'(1968) 같은 작품은 자연, 인간, 기술이 상호작용하는 조나스의 초기 실험을 결정적으로 보여줍니다. 추운 겨울날, 뉴욕 롱아일랜드의 해변에서 촬영한 16mm 흑백 무성 필름은 6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영상이지만, 홀린 듯 계속해서 보게 되는데요. 퍼포머들은 강한 바람에 신체의 움직임을 내맡기고, 바람은 퍼포먼스의 주체이자 협업자가 됩니다. 퍼포먼스 예술과 비디오 아트가 절묘하게 만나 친근하고도 낯선 감각을 일깨우는 거죠. 이 작업은 수십 년 후 2021년 작인 ‘강으로부터 심해의 평원으로’에서 비디오, 드로잉, 사운드를 결합해 자연의 리듬과 인간의 상호작용이 더 심화된 형태로 다시금 연결되는데요. 두 작품을 비교해서, 혹은 함께 보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결 성숙해진 예술가의 세계, 그 총체적 변화를 느껴볼 수 있을 겁니다.
‘아름다운 개'(2014)라는 제목의 영상도 꼭 소개하고 싶군요. 조나스의 ‘동물 조력자’이자 반려견인 오즈의 시점으로 기록된 영상인데요. 오즈의 목에 부착된 소형 카메라 덕분에 개의 움직임과 시선이 담기고, 인간과 동물의 시선을 중첩합니다. 말하자면 바람이 그러했듯 오즈 역시 퍼포머이자 공동 창작자가 되는 거죠. 전 세계 미술계는 ‘포스트휴먼’에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결코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는 주제 의식이 작금의 세상을 명쾌하게 증명하죠. 하지만 이전 세대의 예술가들에게도 이는 절박한 문제였음을, 조나스의 작업을 보면서 다시금 실감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은 과도하게 인간 중심적인 세상의 대안을, 예술을 통해 찾아왔던 게 아닐까요. 조나스라는 작가가 평생 탐구해온 인간 너머의 세계, 이토록 감각적인 작품을 부디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전시는 3월 29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