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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사람들 #1_참을 수 없는 다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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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지점에 정확히 착지한 불꽃. 5인의 성감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다정함나의 성감대는 귀다. 잠깐, ‘귓바람’ 불어봤자 소용없다. 그 정도로 흥분하면 파리, 모기가 날아다니는 여름에는 사회생활을 접어야 한다. 정확히는 따뜻하고 사려 깊은 칭찬의 말이 섹스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나는 쇼핑몰보다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요”라는 말이 ‘가난을 우아하게 포장하는 법’이라고 냉소하는 밈을 본 […]

당신의 성감대에 불꽃이 튀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한 번의 손놀림으로 매끈하게 발화하는 라이터는 지포(Zippo).

욕망의 지점에 정확히 착지한 불꽃. 5인의 성감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는 다정함
나의 성감대는 귀다. 잠깐, ‘귓바람’ 불어봤자 소용없다. 그 정도로 흥분하면 파리, 모기가 날아다니는 여름에는 사회생활을 접어야 한다. 정확히는 따뜻하고 사려 깊은 칭찬의 말이 섹스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나는 쇼핑몰보다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요”라는 말이 ‘가난을 우아하게 포장하는 법’이라고 냉소하는 밈을 본 적 있다. 사랑과 안정감이 성적 흥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도 과감한 섹스 라이프와는 거리가 먼 장기 연애자의 합리화처럼 보일지 모른다. 이에 관한 연구 자료도 표본이 적고 실증보다 인터뷰에 기반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일단은 취향 문제라고 해두자.

나와 파트너는 서로에게 경쟁적으로 ‘예쁜 말’을 하는데 이건 일종의 역할극에 가깝다. 특별한 코스튬이나 채찍, 수갑, 주사기 따위 도구는 필요 없다. 우리가 맡은 역할은 상대의 사소한 것들을 확대 해석해 세상 가장 특별한 존재로 포장하는 아첨 전문 잡지 인터뷰어, 뻔뻔한 로맨티시스트, 응원단장, 심리 상담가 등을 합해놓은 무엇, 말하자면 ‘이상적 파트너’다. 최준 후계자 뽑기 오디션 최종 배틀 같은 걸 상상하면 된다. “나보다 나은 나의 반쪽이여, 오늘 하루는 어땠소?”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엉덩이를 가진 남자가 집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마감을 했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여기 당신의 보드랍고 쫀쫀한 엉덩이가 있으니 마음껏 주무르시오.” 대충 이런 식이다. 그날 하루 서로에게 벌어진 일을 들으며 “그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내리다니 당신은 어쩜 그렇게 스마트하고 용감해? 당신이 자랑스러워!”라 말하고, “나는 1,400만 개의 멀티버스를 둘러보고 당신을 만나러 이 세계로 왔어”라거나 “까마귀가 은붙이를 사랑하듯 당신의 작은 건포도들을 사랑해” “당신은 내 인생에 주어진 가장 큰 행운이야”라고 한다. 우린 서로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한다. 그럴 땐 낯부끄러운 말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 언젠가 그에게 “너는 모국어로도 ‘사랑한다’는 말이 쉽게 나와?”라고 물은 적 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건 좀 닭살이 돋긴 한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더라도 그는 나를 ‘몽 슈슈’라든가 ‘두두’라고 부른다. 프랑스 어린이들이 애착 인형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괴팍한 털북숭이 남자가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걸 들으면 프랑스 친구들은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잠시 숨을 참고 외면했다가 취기가 올랐을 때 그를 놀리기 시작한다

물론 다정한 말이 곧바로 섹스로 이어지진 않는다. 그러니 이걸 섹슈얼한 행위라고 봐도 될지는 모르겠다. 솜털에 콧바람만 스쳐도 클리토리스가 근질근질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한때는 작고 둥근 엉덩이를 가진 남자를 좋아했다. 예쁜 엉덩이를 가진 남자를 보면 눈을 떼지 못했다. 탄탄한 전완근이 특히 좋았다. 그래서 밴드 공연을 가면 드러머만 봤다. 내 것이고 다른 여자의 것이고 간에 부드럽고 말랑한 가슴의 촉감에 흥분하던 때도 있었다. 지나치게 조형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금단의 열매 같은 느낌을 주는 페니스라는 기관의 양감, 미끈한 질감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섹스를 좇아 쓸모없는 인연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맹목적 스킨십의 비릿함에도 질릴 대로 질린 후 남은 흥분제는 다정함뿐이다. 아, 예쁜 엉덩이와 잘생긴 전완근과 쓸 만한 페니스가 기본으로 갖춰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사생활을 공유하는 관계에서 다정한 말처럼 섹시한 것들이 또 있긴 있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들을 꼼꼼하게 청소할 때 살짝 들린 티셔츠 아래로 보이는 그의 복부, 한여름 불 앞에서 오직 나를 위해 요리를 하는 진지한 어깨, 정리 정돈을 하느라 공간 지각 능력을 발휘하고 있을 때 이마에 선 핏줄, 생활비에 웃돈을 얹어 입금하며 ‘내 사랑에게’라고 메모를 남기는 위트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럴 때면 당장 침대로 끌고 가서 옷을 찢어발긴 다음 음탕한 짓들을 해주고 싶어진다. 아쉽게도 이런 일은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 내가 시간이 훨씬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이 대목은 은퇴 후를 기대하겠다.

반대로 서로의 로맨틱하지 않은 꼴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누가 변기 물 내리는 걸 잊으면 변 상태를 확인하고 “이렇게 큰 똥을 눌 수 있다니 역시 당신은 최고의 똥 마스터야. 멋져. 존경해”라거나 “괜찮아, 나는 당신의 냄새마저도 사랑하니까”라고 한다. 서로의 비루한 꼴이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믿음 위에 안정적 애착 관계가 형성되고, 그런 기반 위에서의 섹스는 육체적 쾌감 이상을 낳는다.

한두 잔의 좋은 위스키, 모처럼의 드레스업, 아늑한 곳에서의 데이트 등 일상을 벗어난 장면을 배경으로 그를 응시하는 건 잔잔히 깔려 있던 로맨스에 불꽃을 일으키는 점화 장치다.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때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가치관을 키우며 살아온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최근에 느낀 좌절과 희망을 공유하고, 서로의 화두에 성심성의껏 의견을 내놓는다. 미쳐버린 사회와 아픈 지구를 함께 걱정하고, 새로이 알게 된 정보와 농담을 교환한다. 그러다 취기가 올라 발작하듯 웃어대다가 상대의 무릎을 짚고 일어나 숙취 해소제를 최음제처럼 나눠 먹고 침대로 향한다. 섹스를 하지 않으면 손이라도 잡고 잠이 든다. 당신이 잠든 동안 내가 여기서 당신을 지켜주겠노라는 암묵적 약속 속에 우리의 밤은 편안하다.

때로 우리는 깜깜한 상태에서 바다와 숲과 마을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거실 카우치에 나란히 누워 몇 시간이고 말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별이 수놓은 밤하늘과 어슴푸레한 해안 풍경을 함께 응시한다. 각자의 생각과 시간 속에 충분히 침잠한 뒤 의식이 깨어나면 둘 중 한 사람이 상대의 카우치로 슬며시 이동한다. 그러나 섣불리 정적을 깨지 않으려 애쓰며 천천히 서로를 끌어안는다. 나는 그의 작고 둥근 엉덩이를 쓰다듬고 그의 탄탄한 팔뚝이 내 피부를 스친다. 우리는 서로의 건포도와 참깨가 잘 있는지 안부를 묻는다. 그러다 갑자기 시작된 농담 따 먹기로 분위기가 바뀌는 바람에 유년기의 형제자매처럼 방바닥을 굴러다니며 간지럼을 태우다가 잠들어버린다. 그러다 가끔은 섹스를 한다. 안전하고 느긋하고 만족스러운 섹스를. 이숙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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