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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 가진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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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니, 내가 책을 나눈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저자가 품고 있는 가장 내밀한 목소리를 책이라고 한다면, 그런 책을 읽고 머리로 이해하고 내장으로 소화한 내게도 그 책은 내밀한 나의 일부로 남을 것이다. 내 몸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책의 흔적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어질 때, 당신도 이 책을 읽고 함께 얘기 나누면 좋겠다고 말할 때, 당신의 세계 안쪽에 자리한 책의 세계를 내게도 일러줄 수 있겠느냐고 물을 때, 그것은 내 식의 사랑과 우정의 표현이다.

Pexels

언제부터인가 친구 T는 자신이 원하는 때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새로이 지어 그것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노라 답했다. 지금 그 이름을 붙인 이유를 짐작하거나 T에게 전해 들으면서 지금의 T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 친구의 새 이름을 소리 내 부르는 일은 꽤 기분 좋다. 지금 T는 다시 없을 오직 지금의 T니까. 그런 T가 다와다 요코의 <목욕탕>(을유문화사, 2011) 얘기를 꺼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이 책을 말하게 됐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않는다. 아마도 근래 우리가 하는 노동, 지속적인 관심사, 만난 사람들, 겪은 일, 훗날의 바람을 두서없이 말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혹은 T가 쓸지도 모를 미래의 시나리오를 떠올리던 중이었을 수도 있고, 이 사회가 규정한 통념과 경계를 넘어서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상상하던 차였을 수도 있으며, 국경을 넘어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만나는 여행을 꿈꾸던 중이었을 수도 있다.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오히려 불편하게 여기는 여성들이 새 길을 찾아나서는 얘기를 하던 중이었을 수도 있겠다. <목욕탕>을 읽고 나면, ‘무엇이든 상관없잖아. 그 모든 것인데’라고 말하게 될 테니까. 그날의 대화 이후,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T가 잊지 않고 <목욕탕>을 챙겨왔다. 그 덕에 나는 절판된 을유문화사의 2011년 판본으로 읽었다. 그 후 지난 5월 책읽는수요일에서 이 책을 재출간하기도 했다.

다와다 요코의 ‘목욕탕'(을유문화사, 2011)

다와다 요코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1979년 열아홉 살에 홀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독일로 가 1982년 독일로 이주했다. 그 시절 그녀는 뭄바이, 로마, 자그레브, 베오그라드, 뮌헨, 함부르크로 이어지는 긴 여행길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도 독일뿐 아니라 일본, 미국 등을 오가는 것으로 안다. 그녀는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쓴다. 모국어라는 아늑한 집에 머물러 있기를 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거부한다. 주어진 언어야말로 생각하는 방식과 틀이 되기 때문이다. 그 갑옷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삶으로, 글로 보여준다. <목욕탕>의 ‘나’도 그렇다. ‘나’는 독일에 거주하는 일본인 여성 통역사다. 통역 업무를 하던 중 정신을 잃고 쓰러진 뒤 깨어나 보니 혀가 뽑혀 있다. 더는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언어를 잃은 그때부터 ‘나’는 오히려 환상, 꿈, 현실, 설화의 세계 어디로든 오갈 수 있다. 그뿐인가. ‘나’의 피부는 물고기의 비늘처럼 보인다. 옛날 어느 마을에서는 비늘 달린 여자들이 뭇매를 맞고 쫓겨났다는데, 그럼, 이제 ‘나’도 그렇게 되는 것인가. 이 세계와 저 세계, 몸 안과 밖의 경계라고 할 수 있는 피부가 이상하고 이질적으로 바뀌었다. 이계, 이방인의 출몰.

“나는 젖먹이처럼 소리를 질렀다. 엄마의 자궁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죽어가는 젖먹이의 소리였다. 나는 회오리바람의 어두운 구멍으로 사라질 때 소리를 질렀다. 마지막 힘을 다 짜내어 엄마를 저주했다. 비늘 가진 여자들 다 죽어버려라! 그때 나는 비늘 가진 여자로 변신했고 내 자궁, 회오리바람의 어두운 구멍으로 떨어졌다.”(104쪽)

“혀가 없어서 나는 통역을 할 수도 없고 그 여자가 한 말을 쉽게 알아듣는 말로 옮길 수도 없다. 나는 철자들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타이피스트도 아니다. 글자들은 모두 똑같아 보이는데 녹슬고 굽은 못 같다. 그래서 이제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시를 베껴 쓸 수도 없다. 나는 더 이상 사진에서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사진 모델은 절대로 아니다.
나는 투명한 관이다.(121~122쪽)

Pexels

오래전 그녀들이 감당해온 오랜 저주가 ‘나’에게도 이어지는 것일까. 그 반대다. 다와다 요코는 이미 규정된 경계, 주어진 피부 그 견고함을 허물고 싶다. 그 경계와 피부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싶다. 기존에 해오던 방식 그대로라면, 혀를 잃고, 비늘을 얻은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반대로 생각하면 ‘할 수 없다’는 그 이유로 ‘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신을 규정하던 기존의 것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낯설게 만들기를 자처하기만 한다면. 다와다 요코가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건, 더 멀리 가볼 수 있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T는 더 멀리 가기 위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T는 충분히 그럴 힘이 있다. 그 점이 내가 T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갑옷 따위는 훌훌 벗어 던지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하고 움직이고 전환하기. 내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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