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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вгуст
2023

‘메가 아시아’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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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 아시아’의 시대

아시아는 트렌디하다. 서구가 규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무국적의 새로운 ‘메가 아시아’가 건립됐다. 브라질 리우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인 2016년 여름. 나는 이파네마 해변의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그곳의 유일한 아시안이었던 내가 들어갈 때마다 주인은 태양의 ‘눈, 코, 입’ 노래를 틀었다. “너의 눈 코 입 날 만지던 네 손길 작은 손톱까지 다~~~”에 맞춰 동작까지 한 걸 보면 태양의 영상을 찾아본 […]

아시아는 트렌디하다. 서구가 규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무국적의 새로운 ‘메가 아시아’가 건립됐다.

‘Aunts and Uncles’

브라질 리우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인 2016년 여름. 나는 이파네마 해변의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그곳의 유일한 아시안이었던 내가 들어갈 때마다 주인은 태양의 ‘눈, 코, 입’ 노래를 틀었다. “너의 눈 코 입 날 만지던 네 손길 작은 손톱까지 다~~~”에 맞춰 동작까지 한 걸 보면 태양의 영상을 찾아본 모양이었다. ‘빅뱅이 여기서도?’ 신기했지만 좀 부담스러워 빨리 레드 카펫을 벗어나곤 했다. 올림픽을 맞아 전 세계에서 몰려들 관광객 특수에 설레던 주인은 2층 침대를 3층으로 개조했고, 이국적인 외모의 손님이 들어오면 국적을 묻고는 선별한 노래를 틀었다. 유튜브나 구글에서 검색했을 거다. 세심한 선곡은 아니었다. 어느 날 동남아시아인으로 추정되는 여행자가 입장할 때 주인이 ‘눈, 코, 입’을 틀었다. 친절한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미소와 함께. 그에게 ‘눈, 코, 입’은 한국 가요라기보다는 동양 노래였고, 검은 머리면 한국이든 태국이든 그냥 아시아였다.

한번 올라가면 웬만해선 내려가기 싫은 3층 침대 맞은편엔 러시아 여행자가 머물렀다.우린 서로를 고층 동기라며, 자다 떨어져 죽는 거 아니냐며 친해졌다. 당시만 해도 김기덕 영화 바라기인 외국인을 종종 만났는데, 그는 새롭게도 동양 문학에 관심 있다고 했다. 나는 “동양 문학? 글쎄, 잘 몰라. 번역체가 싫어서 국내 소설 위주로 읽거든”이라고 답하자 그가 놀랐다. 아시아어가 통용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최근 유튜브에서도 미국 대학생들이 ‘아시아어’ 운운하는 영상을 봤다.

나도 뭐라 할 거 없다. 여행 내내 스스로를 ‘아시안’으로 뭉뚱그렸다. 화산섬을 오를 때다. 백두산보다 높은 고지대에 자리해 고산병 때문에 어지러웠지만 투어 비용이 아까워 기를 쓰고 올랐다. 꺼이꺼이 거친 숨소리에 등산객들이 불안해했다. 살면서 “Are you Ok?”를 제일 많이 들은 거 같다. 그들은 동산에 오르듯 가벼웠다. 배낭에 기대 쓰러져 ‘서양인들은 체력이 남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서양인이라니. 생각해보면 자라면서 서양인, 동양인, 유럽인, 러시아인, 동남아시아인, 흑인, 백인 등으로 묶었다. 맥주 한 잔에 벌게지는 3층 동기에게 “술 못 먹는 러시아인도 있구나”라면서 놀린 거, 늦었지만 사과한다.

남미 여행을 계획할 때 그렇게 다양한 나라와 문화가 있는 줄 모르고 ‘남미’로 묶었듯이(열대의 라틴 댄스만 떠올렸다), 아시아 밖 사람들에게 아시아 문화는 대체로 한 이미지였다. 영화만 봐도 그렇다. 비나 이병헌의 초기 할리우드 출연작 포스터 모두 장검을 든 무술인 포스였고, 동양 여성 캐릭터는 어딘가 신비로운 묘령의 여인이다. 아시아 문화는 주로 서구권에서 규정해왔다. 경제와 문화 주도권을 잡은 그들이 아시아를 특정 스타일로 규정해 재생산하는 것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잘 알다시피 아시아는 근대화 과정에서도 다른 길을 갔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정도, 세계화를 받아들이는 정도, 경제 발전 정도만 봐도 차이가 크다. 뭉뚱그려지는 아시아에 반기를 들고 싶지만, 재미있게도 요즘 또 하나의 흐름이 생겼다.

‘메가 아시아’의 시대가 오고 있다. 아시아 속에, 한국 안에서 매거진 에디터로 살면서 그 흐름을 강하게 느낀다.

서구 문화의 영향 아래 대중문화를 형성하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 아시아는 특히 아시아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K-팝에서 시작한 ‘K’ 열풍을 예로 많이 드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과거엔 이 열풍에 ‘한국’이란 정체성이 강했을지 몰라도 이젠 아니다. K-팝은 국적을 넘어 하나의 장르가 됐다. 이렇게 아시아에서 태어나 무국적의 새로운 왕국을 건설한 문화가 아시아를 비롯해 여러 곳에 영향을 끼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로컬 문화가 형성된다. 서구권에서 규정한 ‘아시아적 문화’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문화가 퍼지는 시점이다.

<보그> 8월호의 아시아 퍼시픽 특집을 위해 홍콩, 대만, 싱가포르, 일본, 태국 등의 젊은 창작자를 취재하면서도 더 느꼈다. 이들은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인정을 넘어 트렌디한 배경으로 삼으면서 아주 개인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태국 젠지의 우상 밀리의 곡을 들어보면 국적 추정이 불가능하게 제너럴하면서도 개성이 뚜렷하다. 그녀는 <보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적인 것을 노래에 넣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어요. 얼굴과 억양, 노래에 녹아든 제 경험은 이미 자연스럽게 아시아적이죠. 저라는 존재가 이미 아시아인이고, 그 점이 자랑스러워요.” 밀리는 아시아란 뿌리에서 파생한 더없이 자기다운 음악을 추구할 뿐이다.

메가 아시아란 흐름의 이유로는 ‘K’ 문화의 성장도 있지만, 대륙 간 차이점이 많던 때를 지나 디지털 세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소셜 네이티브’라 칭한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디지털 문화에 적응한 세대라면 다음 세대인 소셜 네이티브는 디지털을 공기처럼 들이마시고 태어났다. 일본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편의점 인간>이란 소설로도 잘 알려진 일본 작가 무라타 사야카의 단편 ‘무(無)’를 읽으면서도 우리가 합집합임을 느낀다. 소설 속 딸의 꿈은 ‘無(없을 무)가 되는 것’이다. 엄마는 당황스럽다. 엄마 세대도 라이프스타일 유행을 따라가긴 했다. ‘그린 걸’이 유행일 땐 초록 패션으로 학교에 다녔고, ‘상복 걸’이 뜨자 염주를 찾고 향을 피웠다. 그런데 이젠 無가 유행이라니, 엄마는 충격이다. 無 라이프스타일은 전부 망각하고 자신의 존재까지 잊는 것이 목표다. 일본 사토리 세대의 심화 버전 같기도 하다. 일본 독자만 공감하는 얘긴 아닐 거다. 당신도 나도, 정도만 다르지, 비슷한 소망을 가진 적 있지 않은가.

비슷한 처지의 너와 나이기에 위로가 가능하다. 이 소설은 아시아 작가들이 묶어낸 단편집 <절연>에 수록됐다. 처음에 정세랑 작가에게 동시대 일본 작가와 함께 쓰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그것을 일본, 싱가포르, 중국, 태국, 홍콩, 베트남, 대만, 티베트 작가로 확장했다. 그 이유를 정세랑은 이렇게 밝혔다. “조금 이상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마음이 어두워질 때 이웃 나라의 작가들, 문화인들을 생각하곤 하거든요.” 각 나라의 외교 분위기가 삼엄할 때 정세랑은 그들과 다정한 서신을 교환했다. ‘여러모로 또 엉망이 되었지만 우린 다시 만날 거잖아요?’ 먼 이국이 아니라 가까운 그곳의 동시대인을 떠올리는 것이다. 나도 잡지 마감을 치르면서 다른 아시아 국가의 에디터를 떠올려본다. 너도 K-팝 스타 섭외하기 쉽지 않지? 오키나와 출신의 힙합퍼 오즈월드는 <보그>에 이렇게 말했다. “최근 세상은 자주 혼돈에 빠지고 있어요. 우선 가까운 이웃 나라끼리 예술로 하나가 돼 모두에게 평화로운 무언가가 뿌리내리면 좋겠어요.”

광주비엔날레가 막을 내리는 7월 9일 직전 광주를 찾았다. 전시장 중 한 곳인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는 일본 설치미술가 모리 유코(Yuko Mori)의 작품 ‘I/O’가 있었다. 흰 천을 길게 포물선으로 늘어뜨린 설치물로 한강의 소설 <흰>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본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2층 전면에 팡록 술랍(Pangrok Sulap)의 거대 목판화가 압도적이었다. 팡록 술랍은 말레이시아의 젊은 작가, 음악가, 사회 활동가 집단으로 코타키나발루에 거주한다. 그들은 비엔날레를 앞두고 광주 출신 목판화 작가들의 작품을 둘러보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아카이브를 조사했다. 그것을 재해석해 판화 ‘광주 꽃 피우다’(2023)를 완성했다. 작품에는 항쟁하는 모습마다 꽃을 새겼다. 비엔날레의 많은 아시아 작가가 서로의 역사를 이해하고 위로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완성했다. 한마디로 메가 아시아의 현장이었다.

얼마 전 페이스갤러리에서 전시를 연 베트남 태생의 프랑스 작가 흐엉 도딘(Huong Dodinh)을 한남동에서 만났다. 그는 여덟 살 때 아버지와 함께 고향 호찌민을 떠나 프랑스로 이주했다. 70여 년을 그곳에 살아 프랑스어를 쓴다. “광주비엔날레에 갔을 때 비가 많이 내려 고향 생각이 났어요. 거기도 비가 자주 내렸거든요. 젖은 연꽃을 보며 좋아하던 기억이 생생해요.” 70여 년 전 일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웃는 노작가에게 물었다. 어릴 적 잠시 머물렀음에도 아시아의 정체성이 평생 작품에 영향을 미치나요? “Oui, oui!”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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