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와 루시 마이어가 말하는 질 샌더의 균형

다른 듯 닮은 커플, 루크와 루시 마이어가 말하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루크와 루시 마이어(Luke & Lucie Meier)는 예측 불가능한 커플이다. “서로 다른 출신, 그리고 둘이 함께라는 점이 우리의 지평을 끊임없이 넓힙니다. 성장하고, 도전하고, 신나는 일이죠.” 루크는 슈프림 헤드 디자이너로 8년간 일했고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 OAMC를 설립했다. 반면 루시는 루이 비통, 발렌시아가, 디올과 같은 프랑스 패션 하우스를 거쳤다. 상반되는 패션 커리어는 전혀 상충하지 않고 서로를 보완한다. 이는 1990년대 미니멀리즘 미학을 고수하면서도 두 사람만의 질 샌더를 만들어가는 힘이다.

2월 24일 밀라노, 질 샌더 2023 F/W 쇼가 있던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모델들이 우산을 들고 정원 사이를 거닐었던 지난 시즌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컸다. 하지만 밤이 되자 비는 그쳤고, 질 샌더는 관객을 어두컴컴한 창고로 안내했다. 커다란 창고 안에는 조명 몇 개만 켜져 있었고, 빛이 떨어지는 곳 주위로 흰색 의자들이 동그랗게 놓여 있었다. “넓고 어두운 장소에서 컬렉션을 선보임으로써 거대한 규모와 개인적 차원 사이에 긴장감을 연출하고 싶었습니다.” 루시는 처음 컬렉션을 구상할 때부터 은밀한 느낌을 주는 장소를 떠올렸다. 의상 역시 예상을 빗나갔다. 오프닝 모델로 선 모나 투가드(Mona Tougaard)가 커다란 로고가 박힌 투박한 모터사이클 재킷을 입고 등장한 것. 처음 보는 질 샌더의 터프한 모습이었다. “수트가 그저 출근용 유니폼이 아니듯 바이크를 타는 사람에게 모터사이클 재킷은 단순한 옷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안에는 옷의 상징적 가치와 개성, 자신감, 그리고 우리가 아름다운 형태를 다루는 방식이 암시되어 있어요.” 루크는 형태와 구조가 강렬하면서도 공예적 특징이 뚜렷한 이 가죽 의상을 시즌 키 룩으로 꼽았다. 루시의 선택은 울 펠트로 만든 의상.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 기술로 가공해 구조를 만들고 프린트를 더했습니다.” 옷 위에 커다랗게 그려진 체리와 캔디 모티브는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강한 긍정의 메시지다. “기분이 좋아지는 요소를 원했거든요.”

초경량 재활용 폴리에스테르와 유리로 만든 파카, 알루미늄 꽃 장식 등 다양하고 지속 가능한 소재의 활용도 돋보였다. “인간성과 자연, 지식과 인식, 공예와 혁신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소재를 고를 때는 물론 함께 일하는 장인이나 협력사를 선정할 때도 늘 이 기준을 따른다. 장인 정신의 가치, 천연자원의 공정한 사용, 인간과 자연 사이의 깊은 상호 의존성에 대한 인식이 미래를 위한 질 샌더의 기본 원칙이다. 인터뷰에는 ‘균형’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우리는 항상 형식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대립한다고 여기는 요소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루크는 남녀 컬렉션을 통합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답했다. “여성복과 남성복이 가진 형태와 기능을 활용해 실용성과 장식성, 워크 웨어와 핸드크래프트, 첨단 기술과 전통 기법을 결합하는 거예요.” 루시가 덧붙였다.

듀오는 2023 F/W 컬렉션을 두고 ‘개인적’이라고 묘사했다. 두 사람이 일을 시작하기 전인 1990년대 중반에 대해 나눈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특유의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분위기가 좋습니다. 수많은 매체를 통해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고 획기적인 실험이 시작되었죠. 흥미로운 음악과 미술이 나왔고, 미래를 굉장히 낙관적으로 바라봤어요.” 루크는 비요크의 ‘All Neon Like’를 이번 쇼의 BGM으로 선택했다. 엄격하고 절제된 디자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브랜드를 동시대적으로 풀어내는 유연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물었다. “우리가 질 샌더를 통해 하고 있는 것, 그 과정과 결과가 우리가 정의하는 아름다움입니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