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Июнь
2023

문구 덕후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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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중독에 맞서는 작지만 강력한 무기

요즘 나는 문구류를 모은다. 이 세계도 잘못 발 들이면 가산을 탕진할 수 있는데 그 단계는 아니다. 5만원짜리 전투용 만년필, 잉크 비침이 적다는 종이, 흩어져 나뒹굴던 메모를 모으기 위한 바인더, 펀치, 어지간한 볼펜 심을 잘라서 넣으면 호환이 되는 멀티컬러 볼펜, 종이 구석을 사선으로 집을 수 있는 클립 같은 소소한 것들을 천년만년 쓸 것처럼 고심해서 고른다. 그러다 보면 ‘아, 남들은 골프장 회원권과 파인 주얼리를 자랑하는 나이에 이건 너무 좀스럽지 않나’ 자괴감이 든다. 내게 문구는 그런 것이었다. 계약서, 정상회담 서류, 왕실 위임장에 사인하기 위해 몽블랑 펜을 꺼내 드는 건 멋지고, 필기할 일 많은 학생이 용돈 아껴 문방구에서 플렉스하는 건 귀엽다. 하지만 그 중간은 너무 자잘해 성인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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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가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는 낡고 감상적인 취미라는 인식도 있었다. 문구 관련 인터넷 동호회에 들어가 보면 고급 만년필 컬렉션을 자랑하며 전 세계 종이 브랜드의 품번과 생산지에 따른 필기감 차이를 까다롭게 논하고, 신입이 나타나면 신나서 맨스플레인을 퍼붓지만 정작 그 만년필로 뭘 쓰는지는 알 수 없는 아저씨들이 잔뜩 있다. 그야 대한민국 인터넷 동호회가 모두 그런데, 문구 커뮤니티가 독특한 건 이 아저씨들이 죄다 이어령 수필체를 구사한다는 사실이다. 교장 선생님, 안녕히 지내셨어요? 

이래저래 학교를 졸업한 뒤로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펜’이라는 식으로 무심하게 살았다. 그러다 디지털 중독으로 집중력 파괴, 기억력 감퇴를 겪으면서 자구책으로 문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의 첫 만년필은 입문용으로 많이 쓰는 파이롯트 카쿠노였다. 과거 잡지사에 다닐 때 문구 좋아하는 피처 기자들은 라미 사파리를 많이 썼다. 누군가는 라미 사파리를 ‘만년필계의 폭스바겐’이라 표현했다. 모나미 볼펜 쓰다가 만년필로 넘어가는 걸 국산 경차 타다가 외제차 타는 것에 비유해 라미 사파리가 그중 엔트리급이라는 것이다. 요즘은 문구 시장도 다양해져서 엔트리급에서도 여러 선택지가 있다. 그중 나처럼 제때 잉크 채우며 쓸 자신이 없어서 덥석 좋은 만년필 사기를 꺼리는 사람이 재미로 써볼 만한 제품이 카쿠노다. 1만원도 안 하는 가격대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극세필이 있고 품질이 고르다. 바로 그 카쿠노의 캐치프레이즈가 이거다. ‘분명 쓰는 것이 즐거워진다.’ 

파이롯트 카쿠노
라미 사파리

그리하여 쓰는 것이 즐거워졌느냐 하면, 그렇다. 손끝에서 사각대는 질감이 재미있어서 옆에 종이만 있으면 낙서를 했다. 회사 이름, 호텔 로고 적힌 둔탁한 볼펜이 아니라 싸구려지만 신경 써서 주문한 물건이라는 생각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아가 그건 촉감으로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피젯 스피너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나는 크라우드를 이용해서 어떤 기기에서든 내용을 동기화할 수 있는 생산성 앱, 메모장 앱을 오래 사용했다. 이것들의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입력이 가능하지만 자주 열어 보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아이디어 수집이 아니라 장례였다. 디지털 메모장에서는 아이디어를 수직 나열하고 순서를 도치하고 인터넷에서 긁은 자료를 복사해 넣는 게 간단하다. 하지만 그보다 복잡한 마인드맵은 그리기가 어려웠다. 태블릿도 마찬가지다. 화면 크기의 한계가 있다. 자료 복사, 저장이 간단하니 수집 단계에서 제대로 요약 정리를 하지 않아 오히려 내용 숙지가 안 되고, 정작 그것을 사용할 단계가 되면 양이 너무 많아서 읽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종이에 메모를 할 때는 자료 수집 단계에서 요약, 주제 정리, 응용 아이디어 기록을 동시에 하기 때문에 활용 단계에서 할 일이 훨씬 줄었다. 이 점에서 실리콘밸리발 온갖 생산성 도구가 클래식만 못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 아날로그 필기 도구와 사무용품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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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는 문구 덕후계의 흔한 문화다. 오래 간직하고픈 글귀를 예쁜 글씨로 써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마음을 이해는 한다. 어떤 문장이든 그것을 손으로 써보면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그때 종이는 기억의 물화이고, 우리의 펜은 기억에 문장을 각인하는 조각칼이 된다. 문장에 어울리는 그래피티는 내용을 이미지화해서 각인을 도와주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직업상 남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 것도 곤란해질 수 있어서 나는 필사나 그래피티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스마트폰에 의존하면서 중단한 독서 노트 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한동안은 책에 집중이 되지 않아 단순 필사만 했다. 그러다 팝콘 뇌가 약간 회복되었는지 요약하여 주제만 메모할 수 있게 되었다. 학생 때는 항상 하던 일이다. 그러고 보면 생산성 향상의 답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학생 때 다 배웠다. 그걸 디지털로 편하게 해보려다 망조가 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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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디지털 도구를 버리고 손으로 쓸 일이 많아지면서 필요한 것도 늘었다. 손이 피로하니 만년필도 태필로 넘어가고, 만년필이 많아지니 잉크도 여러 색을 사고, 그러다 잉크 넣는 수고를 덜어보려고 가진 펜을 개조해서 용량을 늘리고, 외부에서도 마인드맵을 그릴 수 있도록 멀티컬러 펜을 샀다. 남들은 일기, 공부, 아이디어, 업무, 레시피 등 용도별로 노트를 만든다는데 MBTI가 Lazy인 내가 그럴 리 없다. 과거에도 노트 정리를 해보려다 용도가 섞여 엉망진창이 된 끝에 포기해버린 경험이 많다. 그래서 이번에는 노트 한 권에 이것도 썼다가 저것도 썼다가 소분해서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가 틈날 때 분류, 저장할 수 있도록 바인더와 루스리프(바인더에 끼울 수 있는 구멍 뚫린 용지)를 샀다. 기존에는 손 닿는 수첩, 공책, 이면지 등 아무 데나 메모를 했기 때문에 이것들도 한데 모을 수 있도록 타공기를 장만했다. 바인더에 낀 채로 필기를 하는 게 성가셔서 소분 용지를 위한 클립도 샀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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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의 메모를 스크랩해서 손 닿는 곳에 두고 자주 펼쳐 보니 확실히 영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일을 하다가 아이디어가 고갈되면 그것들을 뒤져 본다. 독서 노트도 꺼들어 본다. 그럼 반드시 어디선가 답이 나온다. 뇌 속에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아이디어 간의 연관성이 보이면서 그것들을 발전시킬 여지도 생긴다. 그리하여 문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후로 업무 피로도 줄고,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을 때 늘 안개 낀 듯 부옇던 머릿속도 조금은 맑아졌다. 인간이 조금 자잘해 보이는 건 뭐,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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