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러시아 - 17: 러시아 운전자들의 블랙박스 사랑 왜일까?
지난 2013년 2월 15일 아침 첼랴빈스크(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1,493킬로미터) 상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으로 가득 찼고 언론은 거의 즉각적으로 이 장면을 보도했다. 당시 자동차 속에서 운석을 목격한 수많은 운전자들이 블랙박스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덕분이다. 여러 각도에서 찍힌 영상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침 하늘을 우아하게 수놓는 불덩어리들과 충격 속에 이를 조용히 지켜보거나 (더 많은 경우에) 욕설을 내뱉는 운전자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때부터 이른바 ‘러시아 블랙박스 영상’이 전세계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은 러시아엔 정말로 저렇게 블랙박스 단 차량이 많은지 놀라워했고 혹시 블랙박스 장착이 의무인 것은 아닌지 궁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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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부터 하자면 블랙박스 장착이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 러시아 운전자가 블랙박스를 필수품으로 느끼고 있다.
도로에선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유튜브에서 ‘러시아 블랙박스’ 또는 ‘러시아 운전자들’이라는 제목으로 편집된 동영상들을 보게 되면 놀랍고 엽기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버스 기사와 언쟁을 벌인 후 갑자기 서류가방으로 버스를 치는 할아버지(3:20), 경찰차가 정지하는 순간 차문을 통해 탈출하는 범인(2:37)이 동영상에 찍히는가 하면 반대로 다른 동영상에서는 주차된 차를 박고 도주하는 용의자를 쫓던 경찰관이 차에 뛰어들기도 한다(0:36). 수많은 교통사고, 폭발, 로드킬 영상을 빼놓더라도 볼거리가 넘친다.
이런 동영상을 본 해외 유튜버들은 대개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영상 아래 댓글을 보면 “러시아 운전자들은 자기가 불사신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러시아 블랙박스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재밌다”라는 식이다. 러시아 도로 위의 세상, 특히 거칠게 싸우는 운전자들을 두고 인기 비디오게임에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데일리쇼’ 전 진행자 존 스튜워트는 야구 방망이와 손도끼를 들고 싸우는 두 남자의 블랙박스 동영상을 본 후 댓글에 “러시아는 GTA 실사판이로군!”라고 쓰기도 했다.
그렇다고 러시아 도로가 폭력과 분노로만 가득차 있는 건 아니다. 가슴을 훈훈하게 만드는 영상들도 많다. 할머니가 길 건너는 것을 돕는 운전자들, 차도 위 고양이와 개를 보고 멈춘 자동차들, 힘든 상황에서 서로를 돕는 운전자들도 많다. 자신도 블랙박스를 달았다고 밝힌 안드레이(50세)라는 운전자는 “미친 사람들보다 조심스럽고 모범적인 운전자들이 더 많지 않겠나”라고 본지에 말했다.
블랙박스 VS 보험사기범들
한편 러시아인들이 블랙박스를 필수품으로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분쟁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다. 내 차 앞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저장되므로 경찰이나 법원을 속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순진한 운전자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사기꾼들도 블랙박스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멀쩡히 걸어가다가 갑자기 차로 뛰어들어 차에 치었다고 사기는 치는 경우도 있고, 갑자기 후진해 추돌사고를 일으킨 앞차 운전자가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블랙박스가 정말 효자다.
운전자 권리 운동가 알렉세이 도조로프는 지난 2012년 라디오 ‘스보보다’에 출연해 “바지를 안 입고 운전석에 앉을 수는 있지만 블랙박스 없이는 절대 운전대를 잡지 말라”고 충고하며 블랙박스 덕분에 큰 돈을 잃을 위기를 모면했던 개인적 경험 여러 가지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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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이후로 상황이 많이 변한 것 같지는 않다고 운전자 권리 전문 변호사인 빅토르 트라빈은 말한다. 그는 블랙박스 증거만이 100% 인정된다며 모든 운전자가 블랙박스를 장착할 것을 권했다. 그는 본지와의 대화에서 “경찰이나 판사는 당신이 요청한 증인이 당신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블랙박스에 찍힌 것은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사람들이 러시아에 대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들에 대답하는 <궁금한 러시아> 시리즈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