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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다르게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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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다르게 걷기

SNS에서 우연히 접한 ‘경복궁 산책자 모집’에 충동적으로 반응한 것은 순전히 날씨 탓이었다. 짧은 가을을 흘려보내기 전에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초조하던 찰나에 이시우 작가가 운영하는 ‘궁궐을 걷는 시간’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것이다. <궁궐 걷는 법>이라는 책을 쓴 역사 문화 콘텐츠 작가이자 궁궐 해설사인 이시우 작가는 한 회당 4~5명의 소수 인원이 모여 궁궐을 산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프로그램 참여를 원한다면 인스타그램 @gungwalk 계정을 참고할 것.) <궁궐 걷는 법> 도입부에서 그는 어느 비 오는 날 소나기를 피하다 발견한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며, 궁궐이 가진 다양한 얼굴을 알리고 싶어서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궁궐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번 산책의 주제는 ‘고종의 흔적을 따라 걷는 경복궁’이었고, 모임 장소는 청와대를 마주하는 경복궁 북문 신무문 앞이었다. 그는 책에서 신무문을 통과하자마자 몸을 돌려 북쪽을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신무문과 천장에 그려진 현무, 길 건너 청와대와 그 뒤로 펼쳐진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멋진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고 말이다. 이곳에서부터 시작해 고종이 서재로 썼던 집옥재, 왕비와 머물렀던 건청궁, 고종과 왕비가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을 연못 위 향원정 등 경복궁에 남은 고종의 흔적을 따라 남쪽으로 걷는 코스였다. 일반적인 방문객이 정문에서부터 관람을 시작한다면, 그와 다른 동선을 택하는 것만으로도 장소와 좀 더 내밀한 접점이 생기는 기분이 든다. 다음은 이시우 작가의 말이다. “‘궁궐을 걷는 시간’을 진행하면서 대부분의 관람객이 걷는 방향과는 다른 곳으로 향하려 했어요. 궁궐 안으로 성큼 발을 들여놓기보다는, 담장 바깥쪽 길을 함께 걷다 멈춰 궁궐 안을 살피기도 하고, 때로는 과감히 옆길로 새기도 했죠. 한참을 걷다 뒤로 돌아서서 지나온 길을 다시 보기도 하고, 알려지지 않은 코스를 일부러 골라서 가기도 했습니다. (중략) 우선 많이 보려고 하기보다는 오래 보기를 권합니다.” 

고종의 서재로 사용되었던 집옥재의 내부. 

신무문으로 들어와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건물은 ‘옥처럼 귀한 보물을 모아놓았다’는 뜻을 지닌 집옥재다. 여기서 보물은 책이다. 왕실 도서관으로 사용했던 집옥재는 현재도 궁궐 속 작은 도서관으로 꾸며 대중에 개방하고 있어, 그 안에 들어가 책을 골라 읽으며 잠시 쉬어갈 수 있다. 가끔 궁궐도 사람이 실제로 머물던 장소였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따라서 지극히 외부인의 시선으로 밖에서 안을 바라보게 되는데, 건물 내부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교한 창호라거나 용과 봉황이 섬세하게 그려진 아름다운 천장 등에 구석구석 시선이 머물게 된다. 시선을 안에서 밖으로 돌려 집옥재의 보름달 같은 만월창 너머를 내다보면 이곳에 머물던 사람들이 실제로 누렸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시우 작가는 “궁궐에서 책 읽는 장소로 사용되었던 곳은 공통적으로 책이 눈에 잘 안 들어올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는 농담을 덧붙였다.

집옥재에서 나와 서쪽으로 조금 이동하면 건청궁이 등장한다. 아버지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하길 원했던 고종이 세운 건청궁은 고종의 처소 장안당과 명성황후의 처소 곤녕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청궁은 지난 8~9월 내부를 특별 개방해 방문객을 맞이하기도 했는데, 이 시기에 방문한 사람들은 장안당과 곤녕합을 잇는 복도를 걸으며 고종과 명성황후가 서로의 방을 오가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방문한 시기는 건청궁이 다시 폐쇄된 후여서 내부는 볼 수 없었지만, 건청궁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정원에 서서 왕과 왕비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을 고종과 명성황후의 삶, 그리고 을미사변이라는 비극적 역사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처소로 사용되었던 건청궁 부근의 한적한 풍경.

경복궁 깊숙한 곳에 있는 건청궁 근처는 비교적 한적한 편이라 각자의 사적인 궁궐을 만나기도 좋은 장소인데, 이시우 작가는 어느 부속 건물 처마에 앉아 잠시 음악과 따뜻한 차를 나누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이 드물듯이 특별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 쉬운 (궁궐 산책과 같은) 비일상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갖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이 시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모임에 참석하느라 처리하지 못한 몇 가지 일로 복잡하던 머릿속이 잠시 단순해지며 명상과 가까운 상태가 찾아온 것이다. 함께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도 이후에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는 소감을 말하기도 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또한 궁궐과 만나는 훌륭한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시간에 어울리는 문장을 함께 읽기도 했는데, 내가 골라간 문장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리베카 솔닛이 한국 독자에게 남긴 편지글이었다. “정신과 육체, 내면의 성찰과 사회의 결성,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도시와 시골, 개인과 집단. 이 양쪽은 대립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걸어가는 사람이 바늘이고 걸어가는 길이 실이라면,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입니다. 보행은 찢어짐에 맞서는 저항입니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이어져 있으며, 걷는 일은 찢어진 곳을 꿰매는 바느질이라는 이 문장이 왠지 궁궐을 걷는 행위와 어울리는 것으로 느껴졌다.

연못 위에 떠 있는 향원정과 근정전의 동물 가족 석상, 돌담의 예쁜 문양. 

향원정이 있는 연못 근처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비현실적으로 파란 가을 하늘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런 경복궁의 상징적인 풍경을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지만, 이끄는 사람이 있는 이날의 산책이 특별했던 지점은 혼자였다면 분명히 그냥 스쳐 지나갔을 디테일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근정전의 귀여운 동물 가족 석상이나 자경전의 예쁜 십장생 굴뚝, 궁궐 노동자들이 썼을 화장실, 돌담에 새겨진 문양과 글자, 경복궁에서 가장 예쁜 나무 등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의미를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빌견하는 일은 곧 나만의 사적인 궁궐을 만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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