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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삶에서 발견한 #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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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삶에서 발견한 #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권오경, 허주은, 악시 오, 김주혜, 그레이스 M. 조. 5인의 소설가는 이국에 머물지라도태어난 땅의 역사를, 어머니가 들려준 경험을 잊지 않고 작품으로 발화했다.이들이 쓴 이야기는 여러 나라의 독자를 한국의 아픈 과거 혹은 아름다운 세계로 이끈다. 사회학자 그레이스 M. 조는 한국전쟁 당시 기지촌 노동자였던 어머니 ‘군자’의 삶을 통해 역사의 그늘에 감춰진 진실을 들여다본다. 치열하고 섬세하게 쓰인 회고록 <전쟁 […]

권오경, 허주은, 악시 오, 김주혜, 그레이스 M. 조. 5인의 소설가는 이국에 머물지라도
태어난 땅의 역사를, 어머니가 들려준 경험을 잊지 않고 작품으로 발화했다.
이들이 쓴 이야기는 여러 나라의 독자를 한국의 아픈 과거 혹은 아름다운 세계로 이끈다.

사회학자 그레이스 M. 조는 한국전쟁 당시 기지촌 노동자였던 어머니 ‘군자’의 삶을 통해 역사의 그늘에 감춰진 진실을 들여다본다. 치열하고 섬세하게 쓰인 회고록 <전쟁 같은 맛>은 복잡한 존재인 한 인물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애도하는 법을 알려주는 동시에 슬픔에서부터 시작되는 연대와 저항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어머니의 사적인 역사로 한국전쟁이라는 공적인 역사를 소환하는 작업을 해낸 작가 그레이스 M. 조.

<전쟁 같은 맛> 한국어판 출간 직후 한국을 방문해 개인적으로 유의미한 장소를 둘러보았습니다. 이번 방문에서 어떤 경험을 했나요?

서울에서는 고궁 몇 곳을 방문했습니다. 그 후 부산, 경주, 제주로 이동했지요. 부산에서는 1976년 이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어린 시절 고향을 찾았습니다. 가장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고층 빌딩 사이에 작고 오래된 모습으로 여전히 서 있었어요. 끊어진 연결 고리가 다시 이어진 것 같은, 마법 같은 순간이었죠. 제주에서는 억압된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있는 4·3평화공원이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4·3평화재단을 비롯한 많은 단체가 과거를 함께 추모하고, 과거가 현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드러내는 작업을 했어요. 놀라운 일을 해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음식! 갈치, 미역국, 콩국수, 팥 아이스크림 등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이 정말 많았어요. 제 아이가 가장 좋아한 간식은 호두과자였어요. 뉴욕에도 맛있는 한국 음식이 많지만 호두과자는 아예 색다른 맛이었어요. 전반적으로 아이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 아주 뜻깊었죠.

이 책에는 생태찌개, 고등어조림, 콩국 등 당신이 어머니를 위해 요리한 한국 음식이 등장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자신을 위해 한국 음식을 요리하기도 하나요?

일과 병행하기가 쉽진 않지만, 준비하기 쉬우면서도 가족이 좋아할 만한 요리를 하곤 합니다. 아이들이 채식을 주로 해서 보통은 식물성 재료로 만들어요. 미역국, 비빔밥 등 몇 가지 한식 요리는 정기적으로 하고, 최근에는 비건 불고기 레시피도 개발했어요! 김치전이나 파전, 잡채, 콩국수, 김치찌개, 된장찌개도 가끔 만들어 먹어요.

어머니의 사적인 역사로 한국전쟁이라는 공적인 역사를 소환하는 작업인 만큼, <전쟁 같은 맛>은 한국어판 출간의 의미가 큰 작품입니다. 한국어판을 출간하며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또한 이 책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길 바라는지도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한국사를 배울수록 제가 태어난 시대에 저와 같은 혼혈인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거부당했는지, 때로는 입양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쫓겨났는지 알게 되었어요. 저 같은 사람은 이방인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죠. 한국에 대한 정서적 애착이 있었지만, 동시에 한국인으로부터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연구를 통해 한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과거의 집단적 트라우마와 맞서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22년에 옛 기지촌 노동자들이 정부와의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것을 보고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독자들이 제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로 여기고, 제 어머니에게서 스스로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발견하고, 우리 과거의 아름답지 않은 부분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얻길 바랍니다.

<전쟁 같은 맛>을 읽는 내내 당신의 어머니 ‘군자’라는 이가 가진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어머니의 매력은 무엇이었으며, 당신은 어떤 기질을 물려받았나요?

어머니는 매우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었어요. 모든 사람의 주의를 끌었죠. 저도 그런 카리스마를 어느 정도 지녔다고 생각하지만, 어머니만큼은 아닙니다. 또한 어머니의 가장 큰 재능은 무엇보다 공감하는 능력이었어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슬퍼하거나 분노에 찬 목소리로 얘기하던 모습이 기억나요. 자연스럽게 저의 세계관은 공감하고 애도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궁극적인 행위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죠. 어머니가 물려주신 선물 덕분에 살면서 ‘인간다움’이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어요.

당신 어머니는 음식을 통해 이민자를 보살폈죠. 당신 어머니뿐 아니라, 동 세대 한국 여성에게 특별히 음식이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어머니 세대의 한국인은 대부분 배고픔와 박탈감을 경험했어요. 특히 여성이라면 더욱 그랬죠. 어머니에게 다른 사람을 먹이는 일은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일이었어요. 자신은 이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의 굶주린 소녀가 아니었고,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을 통해 자신의 힘을 느낀 거죠. 동시에 어머니는 고생하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고통을 느꼈고, 주변에 굶주리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어요.

이 책에는 어머니를 ‘생존자’로 만들어준 음식이 등장합니다. 김치나 미역국 같은 익숙한 한국 음식에 이어 치즈버거가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기지촌 노동자에게 치즈버거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음식이었을 테니까요. 글을 읽으면 어머니에게 치즈버거는 생존을 위한 음식인 동시에 낭만과 풍요를 상징하는 음식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당신의 연구에 따르면 기지촌 여성에게 치즈버거는 어떤 음식이었나요?

2000년대 중반에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전쟁 생존자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한 공동 예술 프로젝트, ‘여전히 존재하는 과거’를 진행했습니다. 거기에서 반복된 이야기는 한국인들이 음식을 찾아 미군 기지의 쓰레기 더미를 뒤졌다는 거예요. 일부 한국인은 햄버거와 핫도그 등 미국인들이 버린 음식을 주워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미군 기지는 부와 사치의 상징이었죠. 음식, 심지어 고기도 버릴 정도로 풍족했거든요. 이것이 한국에서 스팸이 대중화된 기원이기도 합니다. 서울의 한 백화점에 예쁘게 포장된 스팸이 진열된 것을 처음 보았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미국에서 스팸은 보통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거든요.

책 속에서 “나는 글을 쓰는 내내 어머니를 피해자로만 보길, 내 학문 분야의 규칙을 따르길, 이민자들이 미국에 빚을 지고 있으니 이에 감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길 거부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연구가 일반적인 사회학의 정도를 따르지 않는다는 비판의 요지는 무엇이었나요? 당신의 책이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도 궁금합니다.

제 연구는 주로 단일한 사회적인 의미체(‘양공주’)에 대한 텍스트 및 문화 연구 분석이었습니다. 저는 ‘양공주’라는 표상이 등장하거나 누락되는 곳을 살폈어요. 디아스포라 한인 2세의 작품에서 양공주의 등장이 억압된 트라우마의 귀환을 어떻게 상징하는지 살펴보았죠. 가족사와 씨름하는 과정에서 일부 사회학자는 제가 깊은 감정을 담아서 글을 쓰는 모습이 불안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연구로 미국 사회학회에서 수여하는 도서상을 받았으니, 또 다른 일부 사회학자는 제 연구의 가치를 알아본 게 아닐까 합니다. 저는 객관성이 담보되어야만 더 나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개념에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 연구는 감정적인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슬픔은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고, 폭력과 불의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또한 제 마음과 정신 속에 어머니가 살아 있게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 과거의 아름답지 않은 부분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신은 “나는 또한 다른 가족이 수치스럽게 여겨 말하지 못한 일에 대해 침묵을 지키길 거부했다”는 말도 했습니다. 같은 시간을 공유한 가족이지만, 각자가 기억하는 서사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었나요? 또한 회고록에서 진실성은 얼마나 중요하다고 여기나요?

이것은 회고록을 작성할 때 끊임없이 부딪히는 질문입니다. 독자가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은 회고록이 작가의 주관적인 경험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경험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작가는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 대해 진실해야 해요. 이는 작가의 진실성뿐 아니라 회고록이라는 장르가 적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다른 가족 구성원과 다른 관점으로 몇 가지 사례를 구성했고, 글을 쓰는 동안 편지, 이메일, 공공 기록 및 사진 같은 문서로 기억을 재구성해 진실성을 뒷받침했어요. 또한 책에 등장하는 몇 명에게 원고를 보여주며 정확성을 검증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쓴 모든 내용을 부정할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원고를 보여주지 않았죠. 대신 이름을 가명으로 바꾸는 등, 그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와 거리를 둘 수 있게 하는 장치를 활용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사회과학에서 ‘자문화기술지(Autoethnography)’라고 부르는 글쓰기의 한 방법론을 활용해 회고록을 썼습니다. 자문화기술지는 진실에 대한 당연한 생각에 도전하는 방법론이에요. 서구 사회와 학자들이 식민지 사람들을 연구하면서 그들이 스스로 말하게 하지 않고, 그럼으로써 식민지 지배자의 관점을 강화해온 오랜 역사가 있죠. 자문화기술지는 이를 교정하기 위한 기법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제 연구는 진실, 특히 식민지, 군사 제국 또는 독재 같은 거대한 힘에 의해 억압된 진실에 대한 열망에서 시작합니다. 때로는 가족 구성원 스스로가 진실을 억압하는 데 가담하기도 합니다. 입 밖으로 내기에는 진실이 수치스럽거나 위험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어머니의 삶을 쓰는 저술에서 다른 가족보다 어머니 본인의 동의를 받는 것이 당신에게 더 중요한 문제였을 것 같기도 합니다. 책 속에는 글쓰기를 통해 ‘양공주’라는 단어의 의미를 전복하겠다고 어머니 앞에서 다짐하는 부분도 등장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쓰기 시작한 이 글을 세상에 내보내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처음에는 이 글을 출판할 계획이 없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가 가진 아름다운 복잡함을 모조리 세상에 알리는 것이 옳다고 느꼈어요. 제 연구의 대부분은 어머니나 어머니 같은 여성을 숨어 있는 곳에서 끌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저의 첫 번째 책을 허락하고 인정했을 뿐 아니라, 다른 가족과의 갈등 때문에 그럴 수 없었던 본명으로 출판하길 원한다고 부탁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계속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어요. 어머니는 기본적으로 제 글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거죠.

어머니라는 복합적인 존재가 당신의 연구와 글쓰기를 이끌어주었다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연구와 창작의 동력이 되어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이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연구를 이어갈지 궁금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달 후 함께 여행 가는 꿈을 꿨습니다. 어머니는 꿈에서 “우리, 진주에 갈 거야”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진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몇 년 동안 진주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아마 다음 프로젝트는 이 꿈의 수수께끼를 바탕으로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에 한국전쟁 때 진주에서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내년에 한국을 방문해 이 역사적 사실을 조사하고 희생자의 후손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어머니의 정신이 여전히 제 연구를 이끌고 있지만, 이번에는 개인적인 슬픔과 다른 사람의 슬픔을 연결해 역사를 인식하는 힘으로서 슬픔을 연구하고 싶습니다.

책 속에서 “선택지가 아무리 제한되어 있어도 저항의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그 저항의 도구가 기지촌 여성에게는 ‘일’이었고, 미국으로 이민 온 어머니에게는 ‘음식’이었다면, 당신에게는 무엇인가요?

주로 사용하는 도구는 교육, 연구, 글쓰기, 말하기입니다. 또 다른 도구는 사랑이에요. 사랑은 억압에 맞설 수 있는 엄청난 힘을 주는 희망의 원천입니다. 애도와 저항의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고 있어요. 애도는 인간성의 중심에 있지만, 현대적인 삶에서는 애도를 위한 충분한 여유와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가 많죠. 애도를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역사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군사 독재 정권 아래에서 억압되었던 한국전쟁 시기의 수많은 학살 사건의 진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생존자와 그 후손이 고인에 대한 사랑과 애도의 시간을 통해 사건의 기억을 되살렸기 때문입니다. 슬픔은 엄청난 정치적 힘이 있고, 글을 쓰면서 그 잠재력을 더 탐구하고 싶어요.

이 책을 읽으며 ‘결국 애도란 한 복합적인 존재를 진심으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결국 온전한 이해에 실패하더라도 말이죠. 당신은 이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나요?

성인이 된 후 제 삶의 대부분은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해 쓰였어요. 이 책을 쓰는 과정은 분명히 저와 어머니의 관계나 어머니가 제게 남긴 유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저에게 어머니의 딸이라는 사실보다 더 자랑스러운 일은 없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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